고령화시대 노인들 왕성한 성욕구… 사회공론화 필요

이영경 기자

교제 조건 돈 요구 ‘상처’… 음성적 관계, 성병 위험

ㄱ씨는 유명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70대 노인이다. 경제력도 남부럽지 않은 그는 은퇴 후 안락한 여생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한 ㄱ씨는 복지관에서 비슷한 연배의 여성을 만났다. 하지만 이 여성은 ㄱ씨에게 이성교제의 대가로 큰돈을 요구했다. 그는 상처를 받았다. 주변에서도 이성교제를 하는 동안 재산 이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와 성관계를 가졌다.

성병에 걸린 그는 요즘 자살 충동을 느낀다. 은퇴 전 사회적 지위에다 경제적 여유도 있었지만 70대의 ㄱ씨는 성병에 걸린 노인일 뿐이라는 초라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치심 때문에 주변에 이야기하거나 쉽게 병원을 찾기도 꺼려진다. 그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이렇게 살 바에야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토로했다.

노인의 실제 성생활을 다뤄 인기를 끈 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 메이필름 제공

노인의 실제 성생활을 다뤄 인기를 끈 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 메이필름 제공

70대 노부부의 성생활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가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달동네 가난한 노인의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을 다뤄 감동을 줬다.

노인의 성과 사랑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노인의 성과 사랑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노인의 성은 드러내놓지 못할 ‘남사스러운’ 일로 치부되고 있다. 성생활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면서 노인 상당수가 성매매와 성병에 노출돼 있다. 노인의 성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서울·경기 지역 5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6.2%(331명)의 노인이 평소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생활을 하는 노인 중 성병 감염 경험은 36.5%로 조사됐다. 성인용품(19.6%)이나 발기부전 치료제(50.8%)를 구입한 노인도 많다. 이들 중 상당수가 성생활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독거노인이 늘고 노인 성매매가 증가하면서 이를 통한 성병 감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만성질환과 생리적 기능 감퇴로 다수의 노인들이 성기능 장애를 경험하지만 이를 불법 발기부전치료제나 성기능 보조기구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고령화시대 노인들 왕성한 성욕구… 사회공론화 필요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성 문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50~70대 여성이 2000~2만5000원의 돈을 받고 근처 쪽방과 여인숙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고 있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정기적인 성병 검사를 받지 않는다. 성매매를 하는 노인 중 44.7%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성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탑골공원 근처나 인근 시장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불법 성기능 보조기구가 싼값에 유통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6~2010년 건강보험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병 환자 가운데 노인층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세 이하의 성병 환자는 연평균 1.8%, 20~64세 이하는 0.9%지만 65세 이상은 12.7%의 가파른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혼 또는 사별한 뒤 혼자 사는 노인들만 성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어도 노년 이후 부부관계가 뜸해지면서 욕구 불만으로 고충을 토로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60대 후반의 ㄴ씨는 6~7년 전부터 아내와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다. 아내의 폐경 이후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지금은 자연스러운 스킨십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아내가 스킨십마저 거부하자 ㄴ씨는 최근 우울증이 악화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한동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고 있다. 혼자 운동을 하며 건강은 유지하고 있지만 ㄴ씨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복지부 조사 결과 성생활을 하는 노인들 가운데 배우자가 있는 노인은 72.1%로 독신 노인에 비해 성생활 빈도가 높게 나왔다. 하지만 이들 중 25.8%는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본인 및 상대방의 성욕구 저하’를 꼽은 노인이 57.6%로 가장 많았다.

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노인 성 상담실을 운영하는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지난해 상담 사례(3036건) 유형을 보면 21%가 성기능에 관한 것이다. 이어 부부 사이의 성 갈등 문제(19%)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약물·성병·성매매와 관련해 상담을 해오는 사례도 5%였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관계자는 “남녀 노인의 성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다”며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나 가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고생했던 아내가 나이가 들면서 각방 쓰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남성들이 어려움을 호소해온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가 서로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하고 함께 성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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